해적과 크루즈
전재산 다 팔아서 평생 소원이었던 호화크루즈 여행 떠났는데 도중에 해적 송민호한테 납치 당한 진우 보고 싶다. 인질이라고 잡아와서 겁 주는데 애가 겁 먹긴커녕 니들이 내 인생을 망쳤다고 눈을 까뒤집고는 지랄하다가 울고불고 난리... 민호 졸라 깜놀하고 진우는 그와중에 "내가아아 이돈으으으을 어떻게 모아서어어 흐흑흑흑 이걸 탔는데에에에 흐어엉컹흐규으컹 니들이 나한테에에에 흐그흑으크그큐ㅠㅠ" 신세한탄을 해대서 민호가 어벙벙 달래면서 "미..미안하다... 모 몰랐지..." 버벅버벅...
그러다 얼굴 퉁퉁 부어서 울던 진우가 갑자기 일어나서 "난 이제 죽어버릴거야 니들이 다 망쳐써!!! 망해써!!!! 죽으꺼야!!!!!!" 하고 배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고 민호가 화들짝 놀라서 다리 붙잡고 그러면 안된다고 말리고 민호가 진우 말린다고 "아 알겠어 내가 해줄게 내가 대신 크루즈처럼 해줄게!!!" 소리지르니 진우가 슥 토끼눈으로 뒤돌아봄 "내 배가 크루즈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있을 건 다 있다고. 내가 대접해줄게. 그럼 됐잖아 뭘 죽어 죽기는......" 민호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가고 진우가 콧물 훌쩍거리면서 "진짜루...?" 하니까 민호가 "어, 진짜로..." 하면서 진우 슬슬 잡아끌어서 난간에서 떼놓고 진우는 "그럼 나 밥부터 죠... 배고파..." 하면서 눈물 닦고 민호는 말없이 진우 데리고 밥 먹인다고 주방 데려가고 진우는 민호 손 잡고 딸꾹질하며 졸졸 따라가고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선원들은 그간의 해적생활의 의미를 되짚으며 드넓게 펼쳐진 망망대해로 시선을 돌림
그리고 그렇게 민호와의 선상생활을 시작한 김진우... 제일 좋은 방 써야하니까 당연히 민호 방 뺏어서 호랑이 가죽 깐 침대 위에서 비단이불 덮고 자고 제일 맛있는 거 해주고 민호랑 그렇게 부대끼며 살다가 정 드는 거지...
어느날 민호가 진우 밥시중 들어주면서 "너는 전재산 다 팔아 그 배 탔다면서, 크루즈 끝나면 뭐할라고 그랬냐?" 물으니 "몰라. 그냥 나는 바다 한가운데 가보고 싶었어... 그 다음은 몰라..." 하고 얼버무리는 진우.
그러던 어느날 민호가 좋은 술 꺼내서 둘이 갑판 위에서 진창 마시고 드러누워 하늘 보고 있는데 진우가 슬금슬금 꺼내는 이야기가. 선원이었던 아버지가 진우와 엄마를 두고 멀리 가는 무역배를 탄 뒤 돌아오지 않음.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빠 찾는 어린 진우에게 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단 한마디도 해주지 않았고 그저 바다라면 질색을 하며 섬에 살면서도 물가 근처는 가지도 못하게 했었음. 그래서 어린 진우는 엄마 몰래 바닷가에 가서 끝도 보이지 않는 바다에 대고 "우리 아부지 어디 데려다놓았냐.. 우리 아부지 돌려줘라 얼른.." 하며 소리도 지르고 울어도 보고 달래도 보고... "땅에 있으면 나 보러 올텐데 아부지가 바다에서 길을 잃어 못 오고 있구나 싶어서."
그래서 망망대해 건너다보면 아버지 있을까 싶어 크루즈 타고 바다 건너는 게 꿈이 됐는데, 다 크고 어머니 돌아가신 뒤 홀린듯이 전재산 다 팔아 바다로 온 거. 진우가 눈을 꾹 감는다 싶더니 "이제 됐다 뭐. 다 됐다..." 그런 진우를 말없이 바라보던 민호가 "나랑 같이 찾자." "응?" "네 아버지. 나랑 같이 찾자. 내가 찾아줄게." "무슨..." "너 바다가 얼마나 넓은데 겨우 이만큼 돌아보고 포기하냐. 참 끈기 없다."
하늘만 보던 진우의 시야에 민호의 얼굴이 들어참. 눈만 꿈뻑꿈뻑 거리며 민호를 보는데 문득 자기를 보는 민호의 눈동자 색깔이 밤바다 같기도 하다... 하던 차에 "내 배 너 줄게."
"크기랑 모양새는 크루즈 못 따라가도 너도 봤다시피 있을 거 다 있고 이 바다 저 바다 어디든 다 다닐 수 있다. 크루즈가 못 들어가는 좁은 바다도 나는 갈 수 있어. 그러니 육지 가지 말고 나랑 있자. 내가 아버지 찾아줄게."
"네가 아직 못 가 본 바다가 얼마나 많은데. 그 바다 다 가 볼 때까지, 네 아버지 찾을 때까지 나랑 있자." 바닷바람이 실어다주는 소금기가 진우의 눈에 어리고 목을 꽉 메우고 진우가 가까스로 입을 열어 "...그래도, 다 가 봐도 우리 아부지 못 찾으면?" 민호가 진우 눈가의 소금기를 다정하게 닦아주고는 "그래도, 나랑 같이 있자. 그때는 아버지 대신 나를 줄게. 나랑 바다 위에서 살자."
진우의 입가가 일그러지고 민호의 밤바다빛 눈동자가 천천히 내려오더니 이내 둘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겹쳐지고 진우는 민호의 목을 소중하게 끌어안음. 그리고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갑판 위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민호에게 안김.
그렇게 결국 해적선 안주인 돼서 민호랑 온 바다를 떠돌며 알콩달콩 사는 진우. 암만 갑판 위에 나와서 살아도 깨끗하고 하얀 피부 자랑하며 민호랑 퐁퐁 사랑이 샘솟아서 틈만 나면 입 맞추고 배 맞추며 잘 먹고 잘 살았음.